Yeonjoo Cho
Interview
해와 달 사이의 것들, 작가 조연주 (2024)
케이 옥션, 작가를 만나다
오늘 소개할 시각 예술가이자 연구자 조연주는 풍경 또는 산수를 통해 작가의 현실과 소망이 만나 중첩되는 시공간을 표현하고, 동양화와 서양화의 이분법적 분류에 도전하면서 문화적 경계의 교차점을 탐구합니다. 전통 산수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꿈과 현실적 조건 사이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마찰을 산수로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 이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해소하고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 여성과 이민자 등 문화적 타자로 비추어지는 개인의 서사에 주목하고, 하나의 정치/문화적 범주로 표현될 수 없는 ‘사이’ 의 존재들을 재현하는 조연주의 작업세계를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온 ‘해와 달 사이의 것들’ 연작에 담긴 작가님 개인서사와 연결된 감정들이 인상깊습니다.
조연주 작가 저는 한국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지만 늘 동아시아 미술사와 한국미술사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전에는 산수화를 전통적인 매체가 아닌 유화로 다시 그리는 작업을 하면서, 그 안에 저라는 개인이 가진 서사를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작업의 방향이 좀 달라졌고, 제가 생각하던 동서양의 문화적 경계에 대해 많이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보여준 작업은 유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서양화로 분류되었는데, 제가 영국에서 같은 작품을 보여주니 Asian Painting (아시아 그림), Chinese Painting (중국 그림), Japanese Painting (일본 그림), 또는 Oriental Painting (동양 그림/동양화) 같은 용어로 제 작품을 해석하더라고요. 동양 사람으로 보이는 제 생김새와 수묵화에서 가져온 제 작품의 스타일 때문에 저와 제 작품을 동시에 동양적인 것으로 분류한 것이죠. 제가 유럽에서 유래한 유채물감을 사용한다거나, 한국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어요. 그래서 유학생활 동안 제가 있는 장소, 저라는 개인이 영국에서 가지는 특수성, 제 작품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해와 달 사이의 것들’은 제가 유학생활 중 느끼는 문화적 소외감,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등 사랑하는 이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면서 느낀 감정들을 표현하는 제목이었어요. 제가 영국에서 해를 보면, 시차 때문에 한국에 있는 제 가족들은 달을 보게 되었어요. 몸은 해가 뜨는 곳에 있지만, 그 순간 달이 뜨는 곳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제가 존재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물리적 거리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었지만, 저는 순간 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유학생이나 장기 여행자들, 이민자들, 그리고 난민처럼 두 가지 이상의 장소를 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런 경험은 낯설지 않은 것이겠죠. 그래서 동양이나 서양처럼 이분법적으로 문화와 시공간을 나누지 말고, 해와 달 사이의 끝없는 스펙트럼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두가지의 점이 아닌 그 점 ‘사이’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사실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동양화의 전통적 장르인 산수화를 서양화의 매체인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표현한 작업 방식에 대해 자세한 소개 부탁드려요.
조연주 작가 앞서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한국 미술사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복수전공하기도 했고, 제가 다니던 조형예술학부의 동양화과 수업을 몇 가지 청강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손에 익도록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재료는 수묵이 아닌 유화였고요. 유화 특유의 질감과 유연한 붓놀림이 좋아서 유화로 제가 좋아하는 오래된 그림들을 따라 그리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 회화 전통에는 ‘전이모사’ 라는, 오래된 거장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학습과 창작의 중요한 방법론이 있는데 이걸 다른 재료로 시도해 본 거죠. 그러면서 유화의 새로운 물질성이 수묵화의 양식과 만나 좀 낯선 감각들 – 기존 산수화에 존재하지 않는 빛의 느낌, 질감, 그리고 새로운 색의 세계 –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2024년 신작 ‘기다리는 곳’은 어떻게 탄생되었나요?
조연주 작가 이 신작은 유학생활 중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만들게 된 그림이에요. 유학생활이 외롭고 단조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제가 영국 글라스고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2019년 말에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되면서 저는 더 고립된 상황에 있게 되었어요. 안 그래도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가족들을 만나는 건 어려웠는데, 코로나가 시작되자 가족들을 만나는 건 1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행사가 되었고요. 저를 키워주신 할머님은 당시 요양원에 계셨기 때문에, 할머니와는 제가 귀국했을 때 1년에 딱 한 번, 요양원의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만날 수 있었어요.
할머니는 그 유리창 안의 세계에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동안 할머니와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어요. 저도 코로나 도중 유학생활을 하면서, 작은 창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계가 전부인 생활을 1-2년 정도 했거든요. 외로웠지만 누군가의 전화, 메세지로 기운을 내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그것 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혼자 창문 앞에서 보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더라고요. 그 시간은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는 시간, 요양원으로 찾아올 몇 안 되는 방문객들을 기다리는 시간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할머니를 비롯하여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보냈던 그 시간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제 생활에서 모은 창문의 이미지와 수많은 하루하루 하늘의 빛깔들을 수집해서, 마치 매일매일 편지를 쓰듯 작은 작품들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에요. 제가 가진 기억을 담은 작품이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또 다른 대상을 떠올리며 관람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재 머물고 계시는 영국 글라스고에서 진행하신 박사과정/연구에 대해 들려주세요.
조연주 작가 저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약 3년 반 정도를 동양화의 의미와 역사, 그리고 저처럼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예술가, 예술의 방법론 (호미 K. 바바가 이야기한 hybridization 혼성화)에 대한 다학제적 연구, 실습 위주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작업한 제 경험에서 비롯된 연구이고요. 우리는 무엇을 ‘동양적 (Oriental)’, ‘서양적 (Western)’ 이라고 나누는지, 그 이분법적 분류의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가 있다면 대안적인 시각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풀어내는 연구였습니다. ‘해와 달 사이의 것들’ 에서 꾸준히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실제 삶과 역사에서는 동양이나 서양 같은 이분법의 점보다도 그 이분법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이의 존재들, 그리고 혼성적인 잡종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연구를 통해서 제 작품이 복잡한 현대미술의 역사와 동시대 지형 속에 어디쯤 위치하는지, 그리고 저와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작업하는 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글라스고에서의 일상과 요즘 관심사에 대해 공유해주세요.
조연주 작가 최근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 속에서 제가 관심 있는 두 문화적 시공간(한국과 영국)을 어떻게 연결할지, 그리고 저처럼 외국인이나 이방인으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창문의 이미지를 많이 그려왔는데요. 창문이 안과 밖을 분리하는 동시에 연결시켜준다는 점, 그리고 이 일상의 이미지가 우리가 거주하는 어떤 공간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것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저는 영국에서 한국과 또 다른 창문의 형태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안과 밖의 경계라는 게 무엇인지 종종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사용하는 비단의 반투명한 재질을 이용하면서도, 비단을 담는 나무 액자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시켜서 좀 더 다채로운 형태의 창문을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창문이 드러내는 안과 밖의 경계, 그리고 그 투명한 벽에 겹쳐지는 이미지들, 마지막으로 그 표면에 머무르게 되는 관람자의 시각을 평면 회화와 설치 작품으로 더 풀어내고 싶어요.
더불어, 최근에 제가 거주하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예술 기금을 받았어요. 그래서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저처럼 서로 다른 시공간을 오가며 두 곳 이상에서 살아온 이민자들이나 난민들과 어떤 공동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구상 중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집(home)에 대한 개념이나 이야기들을 모아서 작품을 만들고, 제가 계속 생각해온 창문 작업들과 함께 내년에 전시의 형태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들려주세요.
어떤 미술 작품이든 한 번 작가의 손을 떠나 감상자들에게 닿으면, 그 때부터 미술 작품이 가지게 되는 의미는 감상자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은 제 삶의 궤적과 맞닿아 있고, 몇몇 작품들은 유학이나 이주, 사랑하는 이와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경험, 상실 등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작품들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삶의 보편적인 경험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의 이야기를 잘 아시든 모르시든 상관없이, 관람객 여러분이 제 작품을 고유한 시선으로 봐주시고 새로운 해석을 해주시는 게 제게는 기쁨이자 놀라움입니다. 앞으로 K 옥션에서 소개할 다른 여러 작품들에 관심 가져 주시고 각자의 시선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편집 아르떼케이 강수현
Artist in residence – Yeonjoo Cho
Project Ability
Our new residency programme started last month, with talented painter and recent graduate Yeonjoo Cho spending a month in our studios. She tells us more about her practice and her experience at Project Ability.
Yeonjoo Cho “I am a contemporary painter who explores gender, identity and culture through landscape paintings. I got a Master’s degree last September at the Glasgow School of Art and am currently thinking about a new art project which is more focused on the form of painting and feminist issues.
Since I have experienced being marginalised as a woman, as an Asian or as both, I have been interested in many social issues related to equality. In addition, in Scotland, I was often considered as a stranger, struggling with communication in English and I roughly could understand and empathise with the aim of Project Ability: creating opportunities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through art.
Also, because most of the people I hung out with in Glasgow were people who studied art or who were in the art scene, I wanted to expose myself to a new environment which would allow me to meet people who have different backgrounds. Thus, when I read the notice of this residency programme, I thought there would be something I could share and learn from other artists at Project Ability.
And, as I expected, I met many artists who were very open-minded toward a new artist who just became a member of the shared studio. Whenever they had a workshop, they stopped by my place to ask questions about my work and to share their experiences, which enabled me to blend in more easily. Since the atmosphere was very warm and everyone looked so passionate, I could be relaxed and push myself to think about my new art project. For me, it was like a perfect bridge that connected the art school or small isolated studio to the broader world. What I try to pursue through my art practice is not art for art’s sake but art that tells stories about me, other people, and our society. This one month was a nice opportunity to experience it in real life.
As an emerging artist who just graduated from art school, it was also a nice experience to have a studio and access to other artists’ studios and workshops. Project Ability offered me lots of professional tools and materials to focus on my practice. Therefore, in practical aspects, it also helped me a lot to continue my practice and to do more experiments.
Overall, I got positive energy and inspiration from lots of supportive artists and staff members at Project Ability. I am hoping that there was something I contributed for the other artists as well.”